들꽃*나무

[스크랩] ♧ 상사화가 피어 있는 풍경

려초 2005. 8. 20. 10:25

그리움은 여름에도 쉬지 않는다

 

상사화가 피어 있는 풍경
    김유자(enthsenqkf) 기자   
▲ 보물 제 209호 동춘당
ⓒ2005 김유자
어제는 조선 효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송준길 선생의 별당인 보물 제 209호 동춘당에 들렀습니다. 늘 봄과 같다는 뜻을 지닌 동춘당은 이름 그대로 봄 경치가 보기 좋습니다. 여기 저기 아름드리 영산홍이 피어나고 그 붉은 빛이 마음까지 붉게 물들이지요.

때가 여름의 막바지인 탓인지 매미 소리가 유난히 잉잉거리더군요. 그러나 동춘당 뒤뜰은 호젓하다 못해 쓸쓸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쓸쓸한 풍경을 채우기라도 하려는 듯이 피어난 몇 송이의 꽃마저 없었다면 얼마나 더 고적했을까요?

▲ 동춘당 뒤안에 피어 있는 상사화
ⓒ2005 김유자
담벼락 아래 피어 있는 꽃은 잎을 만나지 못하고 잎은 꽃을 보지 못해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상사화였습니다.

그런데 상사화라는 이름이 꼭 꽃이 잎을 만나지 못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은 아닌 듯합니다. 그렇게 따진다면 꽃이 먼저 핀 다음에 잎이 나오는 개나리, 진달래, 목련, 산수유 등 수 많은 나무들도 다 상사화라 불러야 마땅할 겁니다.

그렇다면 유독 이 꽃만을 상사화라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개나리 진달래 등은 그래도 줄기라도 있지만 이 상사화는 수족 같은 이파리도 하나도 없이 그저 달랑 꽃대궁 하나로 이 뜨거운 8월의 염천(炎天) 아래 피어 있습니다.

ⓒ2005 김유자
마치 사랑에는 아무런 군더더기도 필요하지 않다는 듯이 말입니다. 이렇게 사랑의 속성을 보여주는 꽃이기 때문에 이 꽃만을 상사화라 부르는 건 아닐는지요. 오래도록 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상사화 꽃이 머금은 애틋한 분홍이 마음에 살짝 물드는 듯합니다.

사랑은 자신의 뿌리까지 태우는 것

혹 상사화 뿌리는 무슨 색인지 아시는지요? 사랑 때문에 가슴이 까맣게 타버렸다는 뜻일까요? 집에서 몇 년간 상사화를 키우면서 안 사실이지만 상사화 뿌리는 흑갈색이랍니다.

어쩌면 우리들에게 사랑이란 마지막까지 자신을 태우는 거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깨우쳐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절에서는 이 상사화를 피안화(彼岸花)라고 부른다더군요. 현세에서 못 이룬 상사의 일념(一念)을 저 세상에나 가서 이루라는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언젠가 절에서 탱화를 그리는 스님인 금어(金漁)가 탱화를 그릴 적에는 상사화의 까만 뿌리를 찧어 바른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습니다. 상사화 뿌리에 탱화가 좀이 슬거나 탈색되는 걸 막는 성분이 있어서 그렇다더군요.

▲ 탱화 수월관음도
ⓒ2005 만봉스님
상사화는 우리 인간에게 참된 사랑은 그렇게 쉽사리 색이 바래거나 좀이 슬지 않는 법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은지도 모릅니다. 소멸의 마지막 순간이 오기 직전까지도 말입니다.

온통 불항아리 뜨거운 가슴밭이었습니다.
꽃울음 머금고 목을 꺾던 해바라기 벌판은
허공으로 하염없이 뿌리던
눈썹끝 눈물 점점이 수정알처럼 박힌 채
제 홀로 타다가
열꽃으로 피어난 얼굴들
하루에도 수 십 번씩 건널 수 없는
저승 경계를 넘나들어도
아직 이루지 못한 사랑 불길은
온통 불항아리 뜨거운 가슴 밭이었습니다.

- 가영심 시 '상사화'


그러고 보면 세상에 사랑만큼 아니 애증만큼 질긴 게 없나 봅니다. 이토록 찌는 듯한 삼복에도 그리움은 멈추지 않고 저렇게 꽃으로 불타오르니 말입니다.
  2005-08-18 16:36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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