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기

금강산 관광길에서 생각-기무라 간

려초 2005. 7. 29. 10:35
해외칼럼] 금강산 관광길에서 생각한 것
기무라 간<木村幹> ·고베대학원 교수
입력 : 2005.07.28 19:02 34'


▲ 기무라 간 교수
서울에서 어느 학회가 주최한 국제회의가 끝나고 파티에서 겪은 일이다. 학회의 중진쯤 되는 분이 갑자기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온 학자들이 당황해 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래를 계속 불렀다.

한국의 친구들과 같이 있다 보면 내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에 구애받지 않을 때가 자주 있다. 파티 장소나 여행 도중의 버스나 배 안에서 한국인들은 큰 소리로 농담도 건네고, 폭탄주를 돌린다. 그러나 일본인, 특히 지금의 일본인에겐 어려운 일이다. 일본에선 파티는 항상 엄숙하게 진행되고, 사람들은 조용조용 말한다.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같이 일본인들은 무엇이든 마음속 깊이 감추고 숨기려 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어릴 적부터 그런 문화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공공장소에서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한국인들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다. 지난달 나는 북한의 금강산에 갔었다. 1998년 관광사업을 시작한 이후로 한국에선 상당히 친근해진 금강산이지만 납치문제 등으로 반(反)북한 감정이 여전히 강한 일본에선 아직은 찾는 사람이 드문 지역이다.

그런데 이번 관광에서 정말 놀란 일이 있었다. 북한측이 금강산 관광도로 옆의 그다지 높지 않는 철망 담장을 통해 결코 잘 산다고 할 수 없는 주변마을을 관광객들이 볼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북한과 같은 체제라면 이런 마을을 관광객들 눈에 띄지 않게 담장을 설치하거나, 아니면 관광도로에서 안 보이는 곳으로 옮기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북한은 ‘일부러’ 가난한 마을을 한국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 이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경제상태가 말이 아닌 북한이 외화벌이 수단으로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내 보인다. 체제 생존에 급급한 북한의 선택으로선 이해할 수 있다. 필자가 위화감을 느낀 것은 이런 북한 정부의 행태보다, 오히려 그런 가난한 북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즐기는’ 한국 사람들이다. 60년 전까지 같은 민족으로 살았고, 지금도 같이 살아야 할 사람들이 전혀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철망이 쳐진 이쪽에서 좋은 버스를 타고 호텔로 달려간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북한 소년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물론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끌어내기 위해 이런 관광사업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금강산 관광이 단순히 관광만이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북한의 안내인에게 북한 생활에 대해 질문하고, 북한의 노래를 불러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관광객들은 북한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변덕스런 체제’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금강산 관광 방식이 특이하다는 것은 다른 나라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요즘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에 가서, 그 나라의 궁핍함과 후진적인 모습을 관광하려고 하면 세찬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남·북한 교류는 틀림없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길가에서 관광객들을 태운 버스를 쳐다보는 그 북한 소년이 실은 자신이 구경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관광객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질까. 잘 사는 이웃 사람의 존재가 그들 눈에는 어떻게 비쳐질까. 그것은 한국 사람들이 일찍이 일본인이라는 ‘사려없는 이웃’으로부터 당연히 배웠을 터이다. 금강산의 절경을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